미완성 돌연변이
조각을 만드는 과정은 어떤 이유이든 그것이 다루는 물질을 나름의 방식과 개념으로 정의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정의된 형태와 물질을 일종의 특수한 의도로 받아들이고 그것의 목적을 독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건 작가의 작업에서 이러한 의도의 표출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작업에 대한 이해와 해석 역시 합당함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 이유는 작가가 작업의 형태와 내용으로 드러나는 의도 자체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설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작업은 주관적 독해가 객관적 사실이 되는 일련의 과정을 문제로 지적하며 대상을 정복하려는 시선 자체를 곤경에 빠뜨리려 한다. 강건은 부드러운 털과 딱딱한 조각, 인간의 신체와 동물의 몸, 고통과 즐거움같이 쉽게 병치되지 않는 상반된 개념과 감각들을 하나의 조각에 뒤섞는다. 2020년 가창창작스튜디오 전시장에서 마주한 <새인간>, <덩어리>, <비완성인>, <낡은새것>은 모두 합성모피와 실, 레진, 폴리우레탄 등을 섞어 만든 일종의 돌연변이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비완성’과 ‘낡은 새 것’을 포함하는 작품의 제목이 전달하는 것처럼 기존의 틀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3차원의 덩어리로 존재하고 있었다. 또 캔버스 위에 펠트를 입혀 완성한 <우르르>, <반짝>, <번쩍>, <으앙>과 같은 작업들 역시 정해진 내용과 형식보다는 순간의 감정과 인상에 더 집중하는 이미지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강건의 작업이 도달할 수 없음 그 자체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분명한 인과관계로 작업이 설명되기를 거부할 뿐이다. 일례로 작업에 등장하는 작가의 신체가 조각을 지탱하는 일종의 지지대로 기능한다는 점은 조각의 다양한 인상들과 작가가 해외에서 겪은 차별과 개인적 상처의 징후적 표출을 연결시키도록 한다. 그렇게 강건의 작업은 완전히 가로막혀있지 않은 길에서 새로운 관계적 형상들을 포착하길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