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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은 불안의 서사를 함축한다.

     - 강건 개인전 <퍽>에 부쳐 

일반적으로 우리는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다. 명확한 정의가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그 대상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무지함에 대한 불안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와 이를 기반으로 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획득하였을 때 상대에 대해 알고 있다는 안도감, 더 나아가 나와 비견한 판단의 근거로 작동하며 서로의 위치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이는 사회 속에서 서로를 인식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강건은 몇 해 동안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생활하였는데,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를 마주한 타자들과의 긴장감은 이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안감을 제공하게 되었던 당사자로서 강건이 작품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는데 있어서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그 형상 앞에서 보는 이들이 직면할 불안감이 결국에는 미적 호기심과 취향을 발현시키게 될 것이라는 것 또한 예상했을 것이다.

 

물리적 모습으로서 인식되는 존재는 모종의 환경, 상황, 사건 등으로 인하여 점차 그 모습에 개념적 인식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강건은 이방인이 되었던 지난 시간 동안 겪은 스스로에 대한 존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2016년 <외부인>,  2019년 <소셜클론>, 2021년 <타아상실> 등 지금까지 강건의 개인전 제목으로 사용하였던 전시 제목에서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탐구는 실제 인체의 형상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의 작품은 익숙했던 환경을 떠나서 낯선 환경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타자들 속에서 인식되는 자신에 대한 인식에 혼란스러웠던 정서를 반영하였는데, 일종의 자화상 조각을 선보이기도 했다. 조형된 얼굴은 얼기설기 엮인 실로 구축된 연약한 매체의 응집이었는데 이목구비를 명확히 묘사하거나 표정을 딱히 드러내지 않은 모양새였다. 이 실들을 구조적으로 지탱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로서 사용된 재료는 바늘이었다. 뾰족하고 단단하면서도 가느다란 이 위협적인 재료는 실이라는 연약한 매체를 강렬한 덩어리로서 인식케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이는 낯선 환경 안에서 몹시 불안정하고 연약한 상태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단번에 흐트러질 수 없게 만드는 장치를 가진 자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양모 천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신체라고 하기에는 비율이나 모양새가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신체 요소를 결합하여 만들어진 존재임을 드러낸 형태를 만들었다. 이는 부드러운 매체의 속성과 살색 톤의 색감, 그리고 발이나 머리 부분에서 연상되는 인간 형상의 재현적 표현 등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외국에서 타인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이러한 신체적 분할과 결합, 뒤틀림을 통하여 해소해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몇 해 전 처음 접한 강건의 작업은 인체와 동물의 하이브리드된 모습처럼 보이는 기괴하기도, 유머러스하기도 한 형태들이 몸을 늘어뜨리거나 뒤트는 동작을 취하며 어두운 공간 속 핀 조명을 받으며 마치 부조리극의 부조리한 캐릭터들이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는 연극같은 모양새였다. 그 표면은 푹신한 양모천과 깃털 등으로 뒤덮혀 있었고 솜으로 채운 이 말랑한 조각은 가볍고 유연하였다. 어둑한 공간 속 괴생명체 형상의 부드럽고 푹신한 덩어리들은 형태로부터 감각되는 엽기적 감흥과 함께 푹신한 따뜻함의 반전된 감각을 환기하게 하였다. 감각의 레이어들이 중첩되는 이 흥미로운 방법론은 작가의 사적인 기억과 처했던 환경 속에서의 다중적인 감정 상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2023년 2월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에서의 그의 작업들은 유리화된 투명한 표면속으로 보이는 화려한 색의 깃털이 뒤섞인, 대충 알아볼만한 동물의 모습이 섞인 듯한 덩어리들이 툭툭 놓여있는데, 하얗고 밝은 공간 안에서 금방이라도 둥둥 떠오를 것 같은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기존에 사용했던 섬유재질의 재료를 최소화 하고 투명 에폭시를 함께 사용하면서 단단한 표면을 구사하였다. 하지만 이는 엷은 막 역할 정도로서 물리적인 충격에 견고하게 방어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섬유가 표면에 둘러싼 말랑한 덩어리로서의 이전 작업 보다 물리적으로 더 연약해진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대적 연출 속에서의 극적 효과보다는 하나 하나의 존재는 연약한 깃털이 주는 가볍고 연약한 감각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대로 노출할 수 있게 되었으며, 화려한 색상을 더욱 뽐내고 있다. 그는 자아에 대한 탐구를 위하여 자신을 객관화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타자화하는 모순적 개념을 더욱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방인이었던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자신의 시선으로 도치하여 자기 스스로 분열과 결합을 반복하다가 하이브리드화된 또 다른 존재들을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상황은 보기보다 처절하다. 

 

작가가 주로 활용하는 화사한 색감과 보드라운 새의 깃털과 새의 모양 역시 다중적이면서도 모순적인 상태로 구현하는데 활용되는 재료다. 작품 <비행 Wrongdoing (#1, 2023, 혼합매체, 36x30x15cm / #2, 2023, 혼합매체, 37x34x16cm)> 시리즈는 새의 모습이지만 뭉뚝한 기둥모양의 날개부분은 새의 비상하는 감각을 부풀고 뭉뚱한 형태의 부피감으로 차단한다. 속이 텅 비어있는 채 스스로 직립하고 있는 존재, 특히 작품 <날로 Raw (2023, 혼합매체, 211x120x80cm)>에는 비상하던 새가 부딪혀 그 직립의 형상 안으로 꽂혀버린 비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지르듯 고개를 높이 쳐들고 네 발을 딛고 부푼 몸뚱이를 지탱하고 있는 작품 <울움소리 Howling (#1, 2023, 혼합매체, 60x85x38cm/ #2, 2023, 혼합매체, 86x103x52cm)>는 처연하다. 전시장 벽면에는 미디엄과 섞어서 굳힌 양모로 만들어진 평면 작업 <흙에 묻힌 어느새 A bird in the dirt (2023, 혼합매체, 지름 70cm(6pcs), 가변설치)>의 강렬하고 화사한 색톤은 마치 묻힌 진흙 속을 빠져나오고자 몸부림치며 그대로 굳어버린 새들의 파닥임이 표면으로 꿈틀대는 느낌으로 전해진다. 

 

이들 사이에 또 다른 회화 형식의 작업에는 거친 질감의 종이에 그려진 것은 뿌옇지만 춤을 추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작품 <춤추다 Dance (2023, 한지에 파스텔, 79x56cm)>). 그림 속에서 춤추는 남녀는 지면을 살짝 떠오른 맹수에게 공격당하기 직전처럼 보인다. 속살을 드러낸 무방비한 인간의 몸뚱이는 피를 뿜으며 곧 찢어질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인지 알 수 없는 이 장면은 이 전시의 하얀 공간 속을 부유하는 덩어리들과 분리되지 않은 음색을 자아낸다. 이 긴장감이 도는 하얀색 방의 한 켠에는 분리된 공간이 하나 있었다. 이 작고 어두운 방안에 놓인 작품<끌리거나 혹은 끌리거나 Dragged or Attracted (2022-23, 혼합매체, 가변설치)>는 우리에 가두어진, 굵고 아름다운 사슬과 연결된 이 작업은 마치 몸뚱이의 껍질만 남고 사지가 퇴화해버린 맹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성질이 예민한 생물들 중 일부는 환경이 바뀌면 바로 죽어버린다고 한다. 인간 역시 환경과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연약한 존재이다. 동시에 이에 대항하는 방책을 본능적으로 만들어오면서 진화해왔다. 강건이 제시하는 이 기괴한 존재들은 현실 안에서의 나약함과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한편, 강인하게 버텨가고자 하는 또 다른 현실적 모습을 역설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퍽 Thump>는 의성어이자 의태어이다. 순간의 폭발적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기어이 밖으로 분출되면서 감각을 일깨우게 하는 그의 언어가 경쾌하기도 슬프기도 하다. 

 

 

 

 

 

 

 

​김인선 _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디렉터

Copyright © Cheongju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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